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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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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최지선 (한국보건복지인력개발원 교수)
권진숙 교수

소진. 消盡, Burnout. 사실 사회복지영역에서 소진처럼 진부한 주제가 있을까싶습니다. 오래 전부터 휴먼서비스 종사자들의 소진은 위험한 수준일 뿐 아니라 직무수행이나 직무만족, 결근과 이직 등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특히 시간과 노력, 몰입과 창의성을 요구받는 사례관리자가 소진되면 제대로 역량을 발휘할 수 없습니다.

어떤 이유에서든 사례관리자가 감정적으로 지치게 되면 클라이언트나 사례관리실천에 대하여 냉소적인 태도를 가지게 되고 결과적으로 사례관리자 자신에 대하여도 부정적으로 평가하게 됩니다. 그 ‘어떤 이유’라는 것은 매우 다양한 유형과 성격을 띠고 있습니다. 예를 들자면, 사례 수에 대한 부담, 보상이나 처우, 클라이언트 폭력 등으로 안전하지 못한 직무환경 등을 금방 떠올릴 수 있을 것입니다. 개인적인 특성이나 경험, 가치관에 따라서도 달라질 수 있지만 우리가 소진을 중요하게 인식하는 이유는 직무특성이나 조직환경의 영향이 더 크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첫 번째, 직무특성으로 보자면, 사례관리자는 어떤 클라이언트를 얼마동안 만나야할지 예측하기 어렵습니다. 상담실 안에서만 일을 하지도 않습니다. 다양하고 복합적인 욕구를 가지고 있는 클라이언트에 대하여 관계맺기부터 하나하나 세심하게 쌓아올려야 하는, 지난한 과정을 거칩니다. 얼마나 클라이언트의 삶에 관여해야 할지, 어떤 지역사회 자원을 동원해야 할지, 사례관리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와 원칙을 지키면서 어떻게 의미있는 성과를 낼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을 매번 하면서 말입니다. 그러니 상담도 아니고 서비스제공이나 프로그램운영과도 다른 복합적인 역량을 요구합니다. ‘케이스 몇 건’, ‘자원연계 몇 건’, ‘무슨무슨 사례관리사업’이라는 표현으로 사례관리자의 일을 평가하는 것이 온당치 않은 이유이기도 합니다.
두 번째로 통합사례관리사는 시군구라는 지방행정조직 내에서 일하기 때문에 민간기관의 사례관리자와는 또 다른 직무환경 속에 있습니다. 어찌 보면 ‘잘 보이지도 않는 작은 섬’처럼 존재한다고 할까요? 사례관리자로 일하는 동료가 적고 슈퍼바이저 역할을 해야 하는 팀장은 순환보직 됩니다. 주로 협업해야 하는 파트너는 읍면동 맞춤형복지팀 구성원이나 민간 서비스제공자, 지역주민 등이어서 조직 바깥에 있습니다. 그리고 일하는 현장은 클라이언트의 가정이나 지역사회입니다.

많은 선행연구에서 직무특성이나 직무환경 등을 포함한 근로생활의 질이 높으면 사람과 일이 잘 조화된 것이며 소진을 덜 경험하게 된다고 보고하고 있습니다. 근로생활의 질은 ①업무에 대하여 통제할 수 있는가? ②업무의 양과 난이도, 역할 스트레스 등 부담이 되는가? ③급여, 제공받은 정보와 자원 등은 충분한가? ④동료, 관리자 등 일하면서 경험하는 사회적 상호작용의 질은 좋은가? ⑤조직은 공정한가? ⑥조직의 우선순위와 윤리는 나와 일치 하는가?에 대하여 파악할 수 있습니다. 2015년도에 한국보건복지인력개발원에서 조사한 통합사례관리사의 근로생활의 질 중에서 눈에 띄게 낮은 문항은 “나는 해야 할 일을 하는데 시간이 부족하다(역문항)”와 “나의 가치와 조직의 가치는 유사하다”, “조직은 질에 전념하고 있다”였습니다. “제대로 하려면 늘 쫓기고 허덕여야 하는데, 조직은 내가 그렇게 일하는 것을 지지하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오히려 더 많은 사례를 맡아서 성과를 내주기 원한다”는 평소 현장 사례관리자들의 고민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통합사례관리사의 소진현상과 그로 인한 역량저하는 일회성 힐링프로그램 등 스트레스 해소차원으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통합사례관리사의 소진문제, 어떻게 접근해야 할까요?
첫째, 비정규직 비율이 높은 통합사례관리사의 고용안정과 보수현실화, 경력에 따른 보수체계를 도입해야 합니다.
둘째, 보다 과감하게 통합사례관리사에게 자율성과 권한을 부여할 필요가 있습니다. 동료 슈퍼바이저 또는 강사로 활동할 수 있으며 지역특성에 맞는 사례관리체계구축이나 자원개발의 자문가로도 충분히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셋째, 통합사례관리사가 감당할 수 있는 적절한 규모와 성격의 사례를 할당해야 합니다. 시간적으로 충분한 개입을 할 수 없는 규모의 사례나 사례관리로 욕구충족이 어려운 민원을 감당하는 상황을 만들어선 안 될 것입니다.
넷째, 사례관리실천의 핵심가치를 지향하고 추구하는 문화가 만들어질 수 있도록 여건을 마련해야 합니다. 주기적인 슈퍼비전과 성찰과 성장이 가능한 프로그램을 통해서 가능할 것입니다.
다섯째, 사례관리자는 클라이언트를 믿고 기다리며 그의 속도에 맞춰서 일했으면 합니다. 어느 순간 클라이언트 손은 놓쳐버리고 혼자 달리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때, 소진상태에서 벗어나기 어려워집니다. 가끔 놀라운 사례를 보기도 하지만, 우리는 기적을 만들어내기 위해서 사례관리를 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한국의 공공영역에서 사례관리를 처음으로 수행한 인력이라는 측면에서 통합사례관리사의 존재는 역사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가집니다. 물론 통합사례관리사 개인별 역량의 편차는 존재합니다. 어느 조직의 구성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유난히 통합사례관리사에게만 엄격한 평가 잣대를 들이대고 냉혹한 현실을 받아들이라고 사실상 강요하고 있지는 않은지, 교육을 하고 있는 저부터 반성할 일입니다.

통합사례관리사의 소진을 예방하는 것은 단순히 개인이나 특정집단을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들이 현장에서 체득한 실천적 지혜와 자원, 네트워크에 대한 손실을 예방해야 합니다. 통합사례관리사가 자신의 일에 가치를 부여하고 조직과 지역사회에서 존중받으면서 일할 수 있는 환경과 문화를 만드는데 함께 해주십시오.
그래야만 더 나은 사례관리 실천, 그로 인한 클라이언트와 지역사회의 변화를 기대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사례관리 정책지원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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