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talk

아동복지사각지대의 예방 및 발굴,
제도 개선만으로는 부족하다

글. 정익중(이화여자대학교 사회복지학과)

2014년 사회에 큰 파장을 불러왔던 송파 세모녀 사건 이후 정부는 사회복지안전망 확충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하지만 생활고에 시달리다 생을 마감하는 안타까운 사건들이 끊이질 않고 있다. 아동들은 이러한 사건의 피해자가 되는 경우가 많다. 올해에도 증평 모녀 사건과 구미 부자 사건까지 사회안전망의 사각지대에 놓인 가정이 극단적인 선택을 하거나 쓸쓸하게 죽음을 맞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아동보호체계는 사례 발굴을 통한 적극적인 사전 예방 중심이 아니라 신고를 통한 사후 대처 위주로 진행되고 있었다. 특히 아동학대 영역은 그러한 경향이 더 심각하여 아동정책은 아동의 피를 먹고 자란다는 표현이 사용되고 있을 정도이므로 아동학대는 언제 어디서든 발생할 수 있다는 인식을 가지고 좀 더 적극적인 사전 예방, 적어도 조기발견, 조기대응을 해나갈 수 있는 체계를 갖추어야 한다.

정부는 사각지대의 적극적인 발굴을 위해 단전, 단수, 건강보험료 체납 등 공공기관의 정보를 활용하는 효율적이고 효과적인 방안을 마련했다. 이를 바탕으로 e-아동행복지원시스템이 가동되고 있다. 아동학대는 은폐된 공간에서 의사표현이 어려운 아동을 대상으로 일어나는 속성 때문에 아동이 사망하거나 중상해를 입은 후에야 알려지는 경우가 많았다.

e-아동행복지원시스템은 18세 미만 아동의 장기결석, 영유아 건강검진·예방접종 실시 정보, 병원 기록 등 빅데이터를 모아 분석하고, 일정 수준 이상의 위험요소가 발견되면 보호 필요 아동으로 추정해 필요한 복지서비스를 연계할 수 있도록 각 읍면동으로 자동 통지하는 시스템이다. 통지를 받은 읍면동 공무원은 해당 아동의 집을 직접 가정방문해 양육환경을 확인하고, 복지서비스가 필요할 경우 드림스타트 등 서비스 제공기관에, 아동학대가 의심되는 경우 경찰이나 아동보호전문기관에 연계한다. 이를 통해 뒤늦게 아동학대를 발견해 사후 처리에만 급급했던 데서 벗어나, 앞으로는 문제를 사전에 예방하고 아동에 대한 사회안전망을 강화할 수 있을 것이다.

e-아동행복지원시스템이 의미를 갖기 위해서는 기계적으로 발굴된 사례를 적절하게 구분하는 능력을 갖춘 초기방문자(intaker)가 가장 중요하다. 초기방문자의 자격과 교육, 재교육이 이 시스템 성공의 관건이 될 것으로 판단된다. 특히 자주 교체되기보다 적어도 3년 이상 장기보임하도록 유도할 필요가 있다. 초기방문자는 지역 내에서 제공되는 서비스를 매우 구체적으로 이해하고 있어야 하고, 이를 사례에 적용할 수 있어야 할 뿐만 아니라 지역 내 사례회의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할 것이다. 아동복지사각지대의 예방 및 발굴뿐만 아니라 향후 통합사례관리의 활성화를 위해서는 법정 급여, 서비스 수급 자격 정의에 있어 소득, 재산 이외에도 개인 및 가족의 다양한 욕구 상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는 방식으로의 전환이 필요하고 이와 관련하여 읍면동 담당공무원의 재량권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

또한 보건소, 보육시설, 각급 학교·교육청 등 아동의 성장단계별 주요 서비스기관은 아동을 가장 가까이에서 관찰 가능하기 때문에 기관 고유의 기능 외에 아동학대 사례의 발견체계로서의 기능을 강화해야 한다. 아동의 출생 전과 영유아기에는 보건소가 주로 공공 서비스기관이 된다. 보건소는 모자보건사업의 일환으로 임산부의 산전 및 산후관리, 영유아예방접종 등록 관리, 산모·신생아 도우미 지원사업 등을 진행하고 있다. 이러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과정에서 아동학대 의심 지표에 대한 인식이 확산되어 위험가정의 학대 징후들을 빨리 발견해낼 수 있어야 한다.

보육시설 또한 영유아기 아동이 보호 및 교육을 제공받을 수 있는 공식적인 기관으로, 종사자가 영유아기 학대 위험이 있는 아동을 발견하여 즉각 신고하는 체계가 이루어져야 한다. 학령기 이상의 아동에 대해서는 초·중·고등학교가 학대 위험이 있는 아동을 가장 많이 발견할 수 있는 기관이 되므로, 각 해당 교육청 및 학교 차원에서 교사가 이러한 아동을 발견하여 신고할 수 있는 환경과 지원이 필요하다.

이러한 아동 발달단계별 기관의 담당자 교육과 의무적인 신고를 통해 각 기관이 아동의 학대위험 및 추가욕구를 발견할 수 있는 체계를 강화하고, 발견 시에는 시군구나 읍면동의 적절한 기관에 바로 신고·의뢰하는 네트워크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네트워크를 통해 지역사회 내 아동학대 위험가정의 조기발견체계가 구축되어 그 가정에 누락 없이 서비스가 제공될 수 있도록 하여 문제의 심각성이 커지는 것을 사전에 예방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동복지사각지대는 이러한 제도 보완만으로는 완전한 해소가 어렵다. 정부와 지자체의 노력만으로는 모든 대상자를 다 찾아낼 수 없다. 정부가 아무리 좋은 정책을 만들더라도 국민이 몰라서 이용 못하면 무용지물이다. 정책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보다 더 신경 써야 할 부분은 필요한 국민이 직접 찾을 수 있도록 널리 알리는 것이다.

예를 들어 기초생활보장 수급권의 결정과정은 본인의 신청에서부터 시작된다. 신청주의의 문제점은 상대적으로 경제사정이 덜 어렵더라도 복지제도를 잘 아는 사람이 제도를 더 많이 이용하는 ‘복지의 역설’을 야기할 수 있다.

신청주의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복지 담당공무원을 대거 채용하고 신청주의를 발굴로 전환하면, 제도를 몰라서 신청을 못하거나 신청해도 소용없다고 생각하는 등의 사각지대는 일정 정도 해결할 수 있다.

그러나 고립된 가정들은 자존감을 훼손 받지 않으면서 위기상황에서 도움을 받길 원한다. 창피해서 신세지기 싫어하거나 신청 절차의 번거로움 때문에 신청을 거부하는 위기가정 등은 발굴한다고 해서 쉽게 해결될 문제가 아니므로 사각지대 해소에는 한계가 있다. 기초생활보장은 ‘헌법이 보장하는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최소한으로 보장받는 것이다.

하지만 기초생활보장이 국민의 권리라는 인식은 매우 미약하다. 까다로운 수급자격, 부정 수급자 색출에 기울이는 노력을 보면 정부가 복지에 대해 어떤 인식을 갖고 있는지 알 수 있다. 기초생활보장은 생존권이어서 국가가 보장하는 것이 맞지만 정부는 시혜 차원으로 접근하고 수급자들은 사회에 민폐를 끼치며 도움을 받는다고 생각한다.

기초생활보장법의 취지는 기초생활보장이 권리라는 인식을 강화한 것인데 국민들의 인식 개선은 함께 이뤄지지 못했다. 어느 가정이나 위기로 추락할 수 있으므로 수급을 받으면서 비참해지지 않고 최소한의 권리라고 인식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아동복지사각지대는 국민 모두의 이웃에 대한 아주 작은 관심과 애정이 뒷받침 돼야 해소할 수 있다. 복지실현은 국가만의 문제가 아니다. 제도가 완벽하고 천문학적인 복지예산을 투자하더라도 사회적 안전망에 구멍이 생기게 마련이다. 이러한 틈새를 채우는 것이 주변 이웃이다. 옆집 이웃이 극단적인 선택을 해도 무관심 속에 방치하는 사회는 바람직하지 않다. 서울시복지재단 연구에 따르면 고독사의 최초 발견자는 건물 관리인이거나 집주인, 가족과 친족, 이웃, 지인과 친구 등의 순서로 주변 사람들이었다. 이러한 이웃들에게 고립가정을 발굴하는 역할을 주문하고 사전에 사회적 고립을 막는 역할을 부여해야 한다.

지금까지 별로 다르지 않은 여러 가지 사연을 지닌 수많은 죽음들이 쉽게 잊혀져 왔다. 이 순간에도 막막한 현실에 짓눌린 누군가가 또 어딘가에서 모진 생각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러한 비극의 재발을 막기 위해서는 복지제도의 보완뿐만 아니라 국민들의 인식개선, 이웃에 대한 작은 관심과 애정 등이 수반되어야 한다. 그래서 정말 아이를 제대로 키우거나 살리기 위해서는 온 마을, 온 정성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