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동네 이야기

사회복지 분야에서 일한 23년을 돌아보면 지금까지 만났던 많은 분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하지만 그 중에도 가장 마음을 무겁게 하는 한 사례가 있다.
조금 더 일찍 만났으면 하는 아쉬움이 머릿속을 가득 채우며 묵직하게 짓누르는 답답함
으로 한동안 일이 손에 잡히질 않았다.그 분을 만난 4시간과 이후 48시간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 놓으며,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을 돌아보고자 한다.

행복e음을 통한 사례관리 점검을 열심히 하고 있던 어느 날 오후, 동주민센터 복지플래너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내부 사례 회의를 진행한 결과 고난도 사례로 판단되어 통합사례관리 의뢰를 하겠다는 것이었다.
이미 의뢰 공문도 발송한 상태였다. 다급한 요청에 맞추어 서둘러 행복e음 전산자료를 검색해
보았더니 상담기록이 너무 깨끗했다. 유일한 상담은 전날 주민센터 수급 담당자와 간호사가
방문하여 남긴 기록
이 전부였다.

당사자48세 여성 1인가구로 26년전 결혼 후 자녀1명을 출산하고 갓 돌이 지난 자녀를 두고 남편과 헤어져 단절된 상태로 살아왔으며 이후 친정모와 형제들과도 10년 전부터 연락을 끊고 지내왔다. 경제적 어려움을 겪으며 신용불량 상태가 되고 이후 주민등록이 말소되어 관내 주민으로 파악이 되지 않는 실정이었다.

가사도우미 일을 하며 2015년부터 동일한 고시원에서 월 22만원에 지금까지 살아왔으며 평소 다른 사람들과도 쉽게 친해지지 않아 개인 사정을 아는 지인이 거의 없을 정도였다. 10년 전 유방암진단을 받았으나 주민등록이 말소되고 건강보험에 가입하지 못해 의료비 부담이 너무 커서병원 문턱을 넘지 못한 채 살아왔다. 그러는 동안 자궁선근증도 발생하여 늘 통증으로 시달렸으며 그럴 때 마다 약국의 진통제로 버티며 생활했다.

동주민센터로 전화를 다급하게 걸었던 그날은 소변을 못 본지가 6일째였고, 너무 고통스러운 통증으로 견디지 못해 스스로 주민센터 도움을 요청했다. 본인의 사정을 설명하고 가정방문 상담을 수락하여 상담을 진행하였다. 동담당자들도 위기 상황은 감지하였으나 당장 말소된 주민등록 회복과 향후 의료비를 위한 공적부조 신청을 먼저 진행했다. 이후 구청 통합사례관리를 의뢰한 그 날, 그 분을 처음 만나게 되었다.

[생명, 안전, 보호의 위기 순간을 판단하는 현장 능력은 필수!! ]

동으로부터 의뢰를 받고 바로 전화 상담을 진행하였는데, 목소리는 힘이 없었고 처음 한 말이 “선생님, 너무 아파요” 였다. 수화기 너머 들려오는 견디지 못할 정도의 통증 호소에 긴장과 불안감이 교차하여 서둘러 방문을 준비했다.

당사자에게는 당장 병원 진료 필요성을 설명하고 신분증과 개인 소지품만 준비해줄 것을 부탁했다.
공공차량으로 당사자의 집까지 도착하는 동안 통화를 이어가며 심리적 안정을 유도 하고 조금만 버텨주실 것을 당부 했다. 고시원에 도착했을 때 복도 끝에 서 있던 그 분은 누가 설명해주지 않아도 제가 만나기로 한 분임을 직감했다.

이미 복부 쪽은 복수가 찬 듯하며 통증으로 인해 얼굴빛은 하얗게 질려있었다.
지속되는 통증과 소변을 보고 싶으나 배출이 되지 않아 화장실을 10분 간격으로 다니고 있었다.

119에 요청 할 여유조차 없이 조심스럽게 모시고 나왔으나 심한 통증으로 착석이 어려워 누워서 병원으로 이동했다.
이동하는 동안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 “가족들과는 연락을 하세요? 연락처 아시는 분이 계실까요?”
  • “아니요, 연락하는 가족들 전혀 없어요.
    연락하지 마세요. 연락해도 안 올 겁니다”
  • “이렇게 아프신데 왜 병원 안가셨어요?”
  • “돈이 없어서요....
    지난달까지는 하루에 4시간이라도 가사도우미 일하면서 근근히
    고시원 비용을 납부 했는데 이번 달부터는 도무지 일을 못해서
    고시원 비용도 밀렸어요....
    제가 건강보험이 없어 병원비가 너무 많이 나와서 그냥 진통제로
    버티며 살았어요.”
  • “이제 더 이상 안 아프게 치료 잘 받을 수 있을 겁니다.
    병원비 전혀 걱정 마시고 마음 편하게 치료 진행해요.”

병원 응급실에 도착해서 진료 대기시간 동안 구멍이 뚫린 화장실 변기에 앉아 기다릴 정도로 극심한 통증이 있었다.
문진을 하고 응급실 침대에 자리 잡은 이후 바로 소변줄 삽입, 진통제 투여 등 의료진이 할 수 있는 행위들이 신속하게
이뤄졌다. 연신 너무 아프다고 힘없이 외치시는 그분에게 진통제가 투여되고 있으니 조금만 버텨 달라고 간절히 말씀
드렸다.

  • “미소(가명)님, 혹시 위험한 상황이 발생하면 가족분께 연락을
    드려야 하는데, 미소님 생각은 어떠세요?“
  • “선생님, 연락해도 아무도 오지 않을 겁니다. 저 무연고로 해주세요”
  • “그렇지 않아요, 가족들이 연락을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초지일관 가족들과의 연락을 거부하고 연락처도 없음을 주장했다.
각종 검사가 필요한 상황으로 응급실내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냥 미소님을 바라보며 힘내시라는 말을 전하는 것 밖에 없었다.

코로나로 인해 응급실내 대기를 길게 할 수 없는 실정으로 간호팀에게 보호자로 등록하고 연락처를 남긴 후에 치료 진 행상 논의할 상황 발생 시 연락을 요청했다. 이후 통증과 불안으로 힘든 당사자가 혼자 대기하는 시간을 최소화 하기 위해 응급실 사회복지사를 만나 사정을 이야기하고, 응급실에 있는 동안 보호자 역할을 맡아주실 것을 요청했다.
평소 사례관리 일을 하면서 협력 체계가 되어 있던 터라 지원 요청이 수월했다.
당사자에게 응급실 사회복지사를 소개하며 제가 없는 동안 도움을 요청하실 수 있다고 안내하니 당사자는 통증 속에서도 감사의 뜻을 전했다.

[복지사각지대 무연고자에게 더 소중한 생명]

사무실로 복귀 하고 나니 늦은 시간이었지만 할 일이 남아 있었다.
복지사각지대로 인한 공적부조 지원의 어려움을 고려하여 의료비 지원을 위한 공문을 작성하였고, 병원 사회사업실로 송부했다. 퇴근 후에도 당사자의 건강 상태가 걱정되어 응급실 사회복지사를 통해 건강상태를 지속적으로 체크했다.
수액과 진통제를 맞으며 안정을 좀 찾고 있으나 암이 너무 악화되어 긍정적 답변을 듣기는 어려웠다.

다음날도 검사는 지속 되었으며 늦은 시간이 되어 병실로 이동이 결정되었다.
예상했던 대로 유방암은 전이 상태가 심각하여 손을 쓸 수 없는 상황으로 일부 장기들이 괴사된 상태로 진단되었다.

결국 신장 투석을 시작하게 되어 응급실 입원 후 이틀 만에 중환자실로 이동하였다.
병실 이동 후에는 면회는 일절 불가능하여, 응급실과 사회사업실 사회복지사를 통해 실시간 당사자 상태를 점검하였다.
결과적으로 복합적인 질환이 너무 심한 상태로 건강을 회복하기에는 어려운 상황임을 파악할 수 있었다

‘제발 조금만 더 버텨 주세요. 앞으로 통증 없이 제대로 된 삶을 살아 보셔야죠’

잘 이겨내시기를 기도하며 입원 후 3일째 주말 저녁, 병원측으로 부터 연락을 받았다. 반신반의 했던 전화 너머로 “ 김미소(가명)님 오후6시 51분 사망하셨습니다, 무연고자로 절차대로 진행 하겠습니다” 미소님은 신장 투석을 하던 중 쇼크가 왔고 이로 인한 심정지로 사망을 했다는 사인을 듣게 되었다.

입원당시 큰 일이 생기면 무연고자로 처리해 달라고 당부한 미소님의 목소리가 귓전에 맴돌았다. 어두운 고시원 방에서 몇날며칠을 통증에 시달리며 찾아주는 사람 한명 없이 오롯이 혼자 감당해야 했던 그분을 생각 하면 마음이 아파왔다. 다행스럽게도 의료비는 사회사업실에 미리 발송한 공문 덕에 병원비 전액이 해결되었다.

마치 모든 상황들을 미리 예상이라도 한 듯 오차 없이 진행되는 일련의 과정들을 경험하면서, 통합사례관리사라는 직업에 보람과 자부심이 느껴지기도 했다.

[너무 짧은 인생을 고통 속에서만 살다 가신 미소님, 명복을 빌겠습니다]

무연고자 처리를 위해 담당부서에 협조 요청을 하고 2주간의 시간을 보냈다.
미소님의 마지막 여정이 외롭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며 가족 소식을 수소문 해보았다.
다행히 친언니와 연락이 닿아 시신을 인계하고 장례식을 맡아주기로 하였다.
넉넉하지 않은 형편이지만 10여년간 만나지 못한 동생의 마지막 모습을 보고 싶다는 유족의 마지막 바람이었다.

여러 차례의 통화 끝에 동생의 사연을 알고 싶어 하시는 언니에게 미소님의 생전 마지막 상황을 설명 드렸다.
듣는 내내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다가 이야기를 다 들은 후에는 결국 오열 하고 말았다.

이 글을 쓰는 오늘, 김미소(가명)님의 장례식이 치러졌다.
‘조금 더 일찍 만났더라면 이렇게 허무하게 떠나지 않으셨을 텐데...’
‘조금 더 서둘러 병원 이송을 했었더라면 불행한 일은 막을 수 있었을 텐데...’
‘병원비 때문에 진료를 거부하는 일은 절대 없어야 하는데...’

통합사례관리 일을 하면서 골든타임을 파악하는 능력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중요한 골든 타임을 알아보는 눈은 통합사례관리사의 비장의 무기이며, 그것은 현장 경험에서 나오는 숙련된 노하우(know-how)에서 나오는 것이라 생각한다. 짧았던 인연이지만 그래도 미소씨가 어두운 고시원에서 혼자 쓸쓸히 운명하시는 것을 막을 수 있었던 것에 감사한다.
앞으로도 통합사례관리사는 사례관리의 최고 전문가라는 자부심을 갖고 현장 안에서 답을 찾기 위해 노력하는 실천가가 되고 싶다.

방송을 통해 전해진 사연 및 담당자 인터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