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례관리 정책지원센터 웹진 [희망e야기]

우리동네 이야기

희망 Story

「신문사 국장에서 사회복지직 공무원으로 제2의 인생
살아가는 김찬석 주무관좌충우돌 사례관리 현장 이야기」

부산광역시 사상구 모라3동 행동복지센터
김 찬 석 주무관

전동휠체어가 승용차만큼 많은 동네

부산광역시 사상구 모라3동은 조금은 특이한 곳입니다. LH아파트 4개 단지가 1개 동을 이루고 있습니다.
4개 단지 중 2개는 영구임대(1992~1993년 입주), 2개는 일반분양입니다. 아파트만 있고, 기업 공장 병의원 등이 없으니 복지서비스 수요는 많고 지역사회 복지자원은 빈약합니다.
전체 주민 11,547명의 39%가 주거급여 기준 수급자이며, 23%가 등록장애인입니다. 그래서 단일 동에 복지관이 3곳(모라종합복지관 백양종합복지관 사상구장애인종합복지관)이나 있고, 사상구 장애인근로작업장까지 있습니다.

기자와 사례관리사

사례관리. 참 어렵습니다. 1년 조금 넘게 사례관리 업무를 하고 있는데 갈수록 두려워집니다.
처음에는 사람을 만나고, 이야기 듣는 것이 너무 좋아 겁 없이 덤볐습니다. 30년 가까운 기자 생활에
길들여진 탓인지 매번 새로운 취재거리를 접하는 것 같아 좋았습니다.

기자 때는 취재거리가 없어서 고민일 때가 많았기 때문에 더 그랬습니다. 취재와 사례관리는 같은 듯 많이 다릅니다. 기사는 거의 1회성입니다. 첫 보도 후 후속보도 형태로 계속해서 관심을 갖는 경우도 있지만 일반적이지는 않습니다. 사례관리는 정반대입니다. 일단 대상자로 선정하면 지속적으로 관심을 갖고
대상자와 접촉합니다.

취재는 신속성과 정확성이 생명입니다. 제가 취재를 하던 시절에는 속보 경쟁 때문에 아무래도 신속성이 우선되었습니다.
조금 덜 정확하더라도 본질적 측면에서 크게 문제가 없다면 먼저 보도를 해서 독점권을 확보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습니다. 그런 습성 때문인지 사례관리에서도 성급하게 결과를 얻으려다 대상자와 충돌합니다.

“관리 받기 싫어요”

A씨는 한부모 가구의 여성 가장입니다. 이혼 후 초등학생과 중학생 자녀를 양육합니다. A씨는 첫 상담에서 탈수급이 목표이며 자격증 취업을 희망했습니다. 규칙적 출퇴근과 토일요일 휴무로 자녀들과 좀 더 많은 시간을 가지길 원했기 때문입니다. 또 백화점 판매업과 식당일을 했다가 실패한 경험도 자격증 취업을 선호하게 된 이유로 보였습니다.

여상을 졸업한 40대 중반의 여성이 할 수 있는 자격증 목록을 뽑아봤습니다. 요양보호사는 격무와 박봉으로 생활이 어려웠고, 간호조무사는 교대근무로 인해 자녀들과 함께 하는 시간이 적었습니다. 대상자의 선택은 주택관리사였습니다. 주택관리사 2차 시험은 주관식도 포함돼 있는 등 난이도가 높습니다. 또 아파트 관리소장이라는 자리 자체가 여성들에게는 다소 버겁습니다. 하지만 대상자의 의지는 확고했습니다. 대상자의 강점이 양육 의지와 자립을 위한 실천력이었습니다.

어쨌든 주택관리사 1차 시험을 통과하고 2차 시험을 치른 후부터 대상자를 닦달하기 시작했습니다. 시험 준비를 이유로 한 조건부 수급이었던 만큼 시험이 끝났으니 본격적인 취업 준비에 나서라고 말입니다. 자주 취업 진행 상황을 확인했습니다. 사실 대상자가 주택관리사 시험에 합격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았고, 아파트 관리소장으로 취업하기는 더욱 어려울 것으로 여겼습니다. 그래서 고용노동부나 구청 일자리센터에 등록하는 한편 자활 참여도 권했습니다.

운명의 그날도 전화로 취업 여부 등을 물어보자 대상자가 화난 목소리로 이렇게 대꾸했습니다.

“나는 자립이 목표다. 남한테 손 벌리는 것이 싫어 하루라도 빨리 아르바이트라도 하고 싶다.
그런데 자꾸 이렇게 취업하라고 채근을 하니 관리 받는 느낌이다.”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초보 사례관리사는 수화기 이쪽에서 여지없이 무너져 내렸습니다. 사과를 했습니다. 사례관리사로서 대상자에 대한 접근방식이 너무 일방적이었던 것 같다고.

그 A씨가 지금 부산 중심가 200세대 가까운 주상복합단지의 관리소장으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뜻이 있으면 길이 있다는 말이 진짜였습니다. 사례관리사로서 A씨를 도와준 것은 미미합니다. 자녀 장학금을 연계하고, 만학의 경험담을 공유한 정도입니다. 대상자에게서 많이 배웠습니다.

2019년 7월 모라3동 행정복지센터로 발령받고 사례관리업무를 시작한 직후입니다. 교정시설에서 귀가한 B씨 집을 방문했습니다. 상담을 통해 그가 향정신성의약품 관련으로 10여 차례 교정시설을 경험한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기자 본능이 살아났습니다. 이런 사람이야말로 사례관리 대상자로 적합하다고 판단했고, 매주 금요일 내부사례회의에 자신있게 후보자로 올렸습니다. 사례관리사로서 제1호 후보입니다. 당연히 선정될 줄 알았습니다. 아니었습니다. 회의에서 내린 결론은 향정신성 의약사범은 행정복지센터에서 관리하기가 무리라는 것입니다. 특히 B씨처럼 교정시설 경력이 많은 이는 관할경찰서에서 우선적으로 중점관리 한다고 합니다. 또 B씨에 대해 행정복지센터에서 연계할 자원이 사실상 없다는 것도 이유였습니다. 수긍할 수밖에 없었지만 아쉬움은 남았습니다.

사실 첫 만남에서 비슷한 연배의 B씨와 약속 아닌 약속을 했습니다. 나이가 있는 만큼 과거를 정리하고 건강한 생활인으로 살아가라고 했고, 상담사도 2021년 정년까지는 그렇게 될 수 있도록 돕겠다고 했습니다. 이후 방문 가는 길에 간혹 B씨 집을 들렀고, 아파트 단지에서 스쳐 만나기도 했습니다. 그는 오토바이로 자장면 배달 일을 한다고 했습니다. 건강하게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조금은 안심을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알아보니 약물 복용으로 다시 교정시설로 들어갔다고 합니다. 그로부터 1년이 가깝도록 출소 소식이 없습니다. B씨를 생각하며 가끔 후회합니다. 사례회의에서 좀 더 강하게 밀고 나가 대상자로 선정했더라면 지금 B씨의 삶이 좀 더 나아지지 않았을까 하고 말입니다.

사연 1

C씨는 만76세 1인 노인 수급자 가구입니다. 이혼을 하고, 10여년 전에는 하나뿐인 딸과도 소식이 끊기면서 삶의 의욕을 잃어 대낮에 차에 뛰어들었습니다. 병원에서 6개월 식물인간으로 있다 깨어났는데 지금도 전신이 쑤십니다. 양방으로는 치료에 한계가 있다며 혼자 한의학을 공부했고 약재를 구입해 집에서 달여 드십니다. 투신 후유증에 시달리는 고령의 몸으로 여름철에도 한약을 달이는 가스불에 장시간 노출되다보니 폐에 물이 차면서 올 여름에는 병원 신세를 졌습니다. 선풍기에서는 뜨거운 바람만 나왔으니 견디질 못한 겁니다. 한국에너지재단에 에어컨 후원을 문의한 결과 대상자처럼 LH 등 공공임대주택 거주자는 지원 대상이 아니었습니다. 사례관리 사업비로 지원하기 위해 내부사례회의에 상정했는데 에어컨이 상대적으로 사치품목이며, 전기요금 부담에다 전례가 없다는 점 등이 걸림돌이었습니다.

C씨가 가장 원하는 물품을 지원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에어컨 수급자가구를 대상으로 전기요금을 조사한 결과 에너지 바우처와 전기요금 감면 등으로 전기요금이 생각만큼 많지 않았습니다. 가구당 사례관리 사업비 한도(50만 원)에 꽉 맞춰 인터넷쇼핑을 통해 에어컨을 주문했습니다. 한시름 놓았다고 생각했는데 돌발 변수가 생겼습니다. 설치비, 출장비 등의 명목으로 적지 않은 추가 부담이 발생한 것입니다. 인터넷쇼핑 때 수도권 지역만 출장료와 설치비가 없다는 조항을 챙겨보지 않은 제 불찰이었습니다. 어쩔 수 없이 설치업체에 전화를 했습니다. 제 잘못을 이야기하는 한편 대상자의 사정을 설명하고 최대한 추가부담을 낮추어 줄 것을 부탁했습니다. 업체 사장님은 서울에서 부산까지 최소 2명의 인력이 차량으로 출장을 가서 벽을 뚫고 실외기를 설치하는 작업에 25만 원 정도가 소요된다며 난색을 표했지만 좋은 일 하신다고 생각하라며 거듭 부탁해 결국 8만 원에 해주겠다는 답변을 얻었습니다. 대상자도 8만 원을 기꺼이 부담하겠다고 했습니다. 사전에 조금만 살폈다면 대상자에게 8만원이라는 부담을 주지 않아도 됐을 것이라는 자책감은 남습니다.

사연 2

D씨는 50대 중반의 남성 장애인으로 80대 치매 노모와 삽니다. 공고 졸업반 시절 실습 갔다가 프레스기에 왼손이 말려들어가 지체(상지장애)/심하지 않은 장애가 됐습니다. D씨 집을 방문했는데 세탁기가 없습니다. 손이 불편한 D씨가 손빨래를 합니다. 세탁기 지원 연계를 위해 재단에 문의했더니 세탁기는 지원한 적이 없다고 합니다. 일단 신청을 받아달라고 한 뒤 지원 필요성을 장황하게 덧붙였습니다. 결국 재단에서 가구당 생계비 후원한도(30만 원)에 맞춰 세탁기를 구입해 대상자에게 전달했습니다.

사연 3

63세 남성 1인 수급자 E씨는 치아가 아주 부실합니다. 많이 빠졌고, 남은 이도 삭은 것 투성이입니다.
만 65세 미만이어서 보건소 틀니 지원 대상도 아닙니다. 음식물이 닿으면 이와 잇몸이 너무 아파 심지어 끓인 라면도 믹서기에 갈아 마십니다. 매일같이 막걸리를 마시는 이유도 취하면 치통이 덜한 데다 끼니도 때우기 때문입니다. 재단에 틀니 지원 문의를 했더니 치아가 하나라도 남아 있으면 안 된답니다. 틀니 지원 신청이 너무 많아 아예 심사 규정을 그렇게 정해놓은 것입니다. 대상자는 치아가 여러 개 있습니다. 재단 기준에서 보면 신청 자격 미달입니다. 일단 치아 파노라마 사진 등 서류를 보낸 뒤 전화로 담당자에게 사정을 설명했습니다. 특히 E씨는 단순히 음식 섭취를 위한 틀니 지원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대상자는 건설일용직을 오래했고, 예전에 과일 행상을 한 적이 있다. 지금 건설일용직을 계속하기는 어렵지만 과일행상을 하려고 한다. 그런데 이가 좋지 않아 먹는 것이 부실하다보니 행상을 알아보려고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것조차 힘들다. 틀니를 해서 뭐든 먹을 수만 있다면 자기 손으로 벌어먹겠다고 한다.” 한달 후 심사 결과가 왔습니다. 지금 E씨는 드디어 틀니를 하게 됐다며 어린아이처럼 들떠 있습니다.

효자들을 위한 탄원서

교정시설에서 편지를 보내온 F씨가 있습니다. 과일가게를 하다 음주운전에 이어 무면허운전까지 범한 F씨는 혼자 남은 80대 노모가 걱정돼 ‘모라3동 행정복지센터 사회복지사님’ 앞으로 편지를 보내왔습니다. 노모가 척추협착증이 심한 데다, 코로나19까지 기승을 부리는데 마스크는 잘 쓰고 계시는지 걱정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노모를 방문해 아들 편지를 읽어드리자 훌쩍훌쩍 우십니다. 글을 모르는 노모는 코로나로 교정시설 면회마저 금지되자 아들 걱정이 컸던 터였습니다. F씨와 편지를 주고받다 F씨를 위해 탄원서를 쓰기도 했습니다.

탄원서라면 67세의 G씨도 생각납니다. 평생 불효만 저지르다 뒤늦게 93세 노모의 마지막 병수발을 직접 하겠다며 요양병원이 아니라 굳이 집에 모시던 G씨입니다. 그런데 동네 체육공원에서 애완견 싸움이 어른싸움이 돼 입건됐습니다.
공교롭게도 집행유예기간이었습니다. 재판을 기다리던 중 주민센터로 찾아와 탄원서를 쓰려고 행정서사를 찾았더니 10만원을 달라고 해서 그냥 왔다고 하소연합니다. 수급자에게 10만 원은 정말 큰 돈입니다. 탄원서를 써서 대상자 편으로 국선변호인에게 전달했습니다.

공감 이상의 무엇

어느 책에 이런 글이 있었습니다.
배우 김혜자 씨가 네팔에 갔습니다. 시골 장터 한 귀퉁이에 웬 여인이 물건 보따리를 펼쳐 놓고 앉아 하염없이 울고 있더랍니다. 김 씨도 그 여인 옆에 앉아 같이 울었습니다. 옷차림도 다르고, 피부색도 다른 두 여인이 그렇게 한참을 울었습니다. 네팔 여인이 이윽고 옆에 있는 이국 여인네를 보고는 눈물을 훔치며 겸연쩍은 미소를 보였습니다. 나중에 일행이 김 씨에게 물었답니다. 왜 그렇게 울었느냐고.
김 씨는 그냥 그러고 싶었답니다.

책에서는 이를 ‘공감’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저는 ‘공감’보다는 ‘그냥 그러고 싶었다’는 말이 훨씬 가슴에 와 닿습니다. 저에게도 87세 어머니가 계십니다. 젊은 시절 그렇게 괄괄하고 여장부로 소문났던 당신이 이제 등 굽은 할머니가 되어 기저귀를 사용하고, 아파트 단지 내 산책도 어려울 정도로 거동이 불편합니다. 저는 방문을 갈 때마다 어머니를 생각합니다.
제가 걷는 걸음 하나하나가 어머니를 대신해 걷는다고 생각하고, 이 걸음들이 어머니의 다리에 조금이나마 힘이 된다고 믿습니다.
그런 까닭에 웬만큼 걸어도 피곤하지가 않습니다. 하물며 어머니 같은 어르신들을 만나러 가는 길이니 어찌 즐겁고 행복하지 않을 수 있습니까.

권한이 없습니다.